청청수의 테마여행/경기도 여행

강화도의 초지진/덕진진/광성보/강화역사관 여행을 다녀오다

석화이장 2009. 10. 7. 23:15

강화도는 우리나라에서 다섯번째로 큰 섬이다.  우리나라 역사상 고려시대 몽골항쟁의 근거지이며 조선시대 병인양요, 신미양요의 격전지이다. 그래서 이번 강화도 여행이 살아있는 역사 속으로 들어가보는 행보가 될 것임에 틀림이 없다. 다소 딱딱하게 여겨지는 역사를 한 번 되집어보면서 쉽고 즐겁게 풀어보자는게 이번 여행의 또다른 의미라고 볼 수 있다. 이번에는 강화초지대교를 건넜다. 초지대교는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초지리와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 약암리를 잇는 아치형 4차선 다리로 2002년 8월 28일 개통해서 강화대교를 이용하는 것보다 30분 정도 빠르게 도착했다.

 

 ◀ 초지진 ▶

 

 

강화초지대교를 건너 오른쪽으로 바로 나오는 초지진에 먼저 갔다.

초지진은 해상으로부터 침입하는 외적을 막기 위해서 조선 효종 7년에 구축한 요새다. 그 뒤 조선 고종 임금댸 프랑스함대와 미국함대 그리고 일본 군함과 4~5년마다 치열한 전투를 벌인 격전지이다.  사진에 있는 소나무에는 당시의 포탄 자국이 그대로 남아있기도 했다. 성의 높이는 4m, 장축은 100m이다.

 

입잘료를 내고 들어가면 성안이다. 홍살문으로 지어진 집 안에는 당시의 대포가 하나 들어있다. 이 대포는 사거리도 짧고 정조준도 잘 안되었던 사정거리 700m로 위력이 약했다. 무기가 열악했던 우리는 결국 고종 13년에 (운양호 침공) 강압적인 강화도 수호조약을 하게 되어 일본 침략의 문호가 개방된 곳이다. 그 뒤 허물어져 돈대의 터와 성의 기초만 남아있었으나 1973년 복원하였다. 전에는 그토록 치열한 싸움터였지만 지금은 성안에서 밖을 내다보면 초록색 등대와 강화초지대교가 한 눈에 들어오는 낭만적인 풍경이 펼쳐져있어서 역사가 무색할 정도였다. 그 때의 전투장면은 안내판을 읽을 때만 상기되는 것 같았다.

 

 

 ◀ 덕진진 ▶

 

 덕진진은 강화 12진보(鎭堡)의 하나이며, 1658년 건립되었다. 덕포진과 더불어 해협의 관문을 지키는 강화도 제1의 포대였다. 1866년 병인양요때 양헌수의 부대가 밤의 어둠을 타서 덕진진을 거쳐 삼랑성으로 들어가 프랑스군을 격파하였고, 1871년 신미양요 때는 J.로저스 중장이 이끄는 미국 극동함대와 이곳에서 치열한 포격전을 벌였다. 그러나 초지진에 상륙한 미국 해병대에 의해 점령당하는 비운을 맞았다.

 

 성안으로 들어가면 강화해협이 바로 눈앞에 보인다. 엣날에는 이 해협이 배를 타고 한강으로 들어가는 통로였기 때문에 아주 중요한 해상교통로였다고하는데 지금은 고기잡이 배가 한가롭게 그물을 던지고 있었다. 누렇게 익어가는 벼와 잔잔한 바다에서의 고기잡이배. 참으로 아름다운 한 폭의 수묵화였다.

 

 미국해병대에 점령 당했을 때 성첩과 문루가 모두 파괴되고 문루터만 남게 되었는데 1976년 문루를 다시 세우고 돈대를 보수하였으며 사진에 보이는 남장포대도 개축하였다.

 

 ◀ 광성보 ▶

  

 광성보라는 명칭은 이곳의 지명에서 유래한다. 조선 후기 강화도 해안수비를 위해 설치된 방어시설 가운데 하나로 조선 효종9년(1658)에 강화유수 서원이 광성보를 설치하였다. 성곽 위에 '안해루'라는 현판이 보이는데 이것은 영조21년(1745)에 성을 개축하면서 성문을 건립하고 안해루라 하였다고 한다.

 

 성문을 통해 들어가면 바로 강화해협이 보인다. 강화해협에서 광성보 앞에 있는 해협이 가장 폭이 좁은 지역이며 고종 8년(1871)인 신미양요 때 미국 해군과 치열한 전쟁이 벌어졌던 현장이기도하다. 조선의 지휘관인 어재연 장군을 비롯한 전 용사가 용감하게 싸우다가 장렬히 순국한 곳이다.  어재연 장군은 "비록 내 몸은 죽어가지만 조선의 정신은 결코 죽지 않는다"라는 말을 남겼다. 당시 전투에 참가했던 미 해군장교는 전사기록에서 '좁은 지역에서 48시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벌였던 가장 치열한 전투'라고 적었다고 하니 그 때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패배의 원인은 역시 열세한 무기였다.

 

 당시 쓰였던 대포들인데 가장 큰 것이 홍이포, 중간 것은 소포, 작은 것은 블랑기라는 이름이 붙어있었다.

 

◀ 강화역사관 ▶

 

 

 

 갑곶돈대 안에 위치하고 있는 강화도 박물관으로 1988년 완공되었다. 선사시대부터 고려시대, 조선시대, 대한제국에 이르기까지 강화의 역사에 대한 설명과 전시물이 있으며 2층으로 되어있고 4개의 전시실로 구성되어 있다.

 

 

 

 

 강화역사관 안에 있는 팔각정인데 그 아래에는 우리나라꽃 무궁화가 활짝 피어서 역사관의 의미를 더해주고 있었다. 팔각정이 위치가 높은 곳에 있어서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와 쉬어가기에 안성맞춤이었고,  강화역사관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고 주위 풍경과 빨간꽃이 줄지어 피어있는 해안도로까지 보여서 좋았다.

 

 갑곶돈대의 모습이다. 대포가 설치되어 있고 잔잔하게 흐르고 있는 강화해협이 바로 보인다.

 

 역사관 안에서 하마터면 그냥 지나칠뻔한 천연기념물 78호의 400년 된 탱자나무.

역사관에서 동쪽으로 20m 지점에 있다. 이 갑곶리 탱자나무는 강화도가 우리나라 서해안에서 탱자나무가 자랄 수 있는 북쪽한계선이 됨을 입증하는 귀중한 자료라고 하는데 지금 탱글탱글한 탱자가 먹음직스럽게 주렁주렁 달려있다. 강화도에 탱자나무를 심게 된 이유가 성벽 밑에 심어 철조망과 같은 역할을 하여 적병의 접근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는 점에서 이 탱자나무는 우리 조상들의 국토방위를 엿볼 수 있는 유물이기도하다.

 

글/사진 :  여행작가 샤랄라

 

♣강화 관광지 요금표♣

 

구 분 청소년·군인·어린이 어 른

마니산 (함허동천)

개 인 단 체 개 인 단 체 구 분 관 람 료

역 사 관

700 600 1,300 900 어린이 개 인 500

고려궁지

600 500 900 700 단 체 300

광 성 보

700 600 1,100 900 청소년 군 인 개 인 800

덕 진 진

500 400 700 600 단 체 600

초 지 진

500 400 700 600 어 른 개 인 1,500
구     분 일괄관광(5개소) 단 체 1,200
역사관
고려궁지 광성보 덕진진 초지진
청 소 년 어 른 아 영 료
(1일추가)
천막(소형) 중형 대형

개 인

단 체

개 인

단 체

2,000 (1,000) 3,000 (1,500) 4,000
(2,000)

1,700

1,300

2,700

2,000

Tip!!!!

초지진/덕진진/광성보/강화역사관/고려궁지 이 다섯 군데를 들어갈 수 있는 일괄표로 사면 30% 할인된

성인 2,700원 어린이 1,700원에 살 수 있는데 아주 편리하다.

 

♣ 문의 및 안내♣ 

 초지진 매표소

 032-930-7072
 덕진진 매표소  032-930-7074~5
 광성보매표소  032-930-7070~1
 강화역사관매표소  032-933-2178

 

 ♣이용시간♣

하절기 : 09:00 ~ 18:00

동절기 : 09:00 ~ 17:00

(강화역사관은 09:00 ~ 18:00까지이며 입장은 퇴관시간 10분 전까지이다. 연중무휴)

 

♣찾아가는길♣

초지진 : 서울 -김포(48번 국도)-누산리-양곡-대명리-강화초지대교-우측전방 100m

덕진진 : 강화초지대교-우회전-덕진진사거리에서 우회전-덕진진

광성보: 강화초지대교-우회전-초지진에서 5km-광성보

강화역사관 : 광성보에서 해안순환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가면 오른쪽에 있다.

 

♣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