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청수의 테마여행/경기도 여행

마음을 촉촉하게 해주는절 전등사와 동막해수욕장의 일몰

석화이장 2009. 10. 6. 16:17

강화도에 가고싶은 곳이 하도 많아서 여기저기 돌다보니 어느새 해가 저만큼 산위에 걸려있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단군왕검의 세 왕자가 쌓았다는 정족산 삼랑성 내에 위치한 1600여년이나 된 고찰 전등사를 놓칠 수 없어서 2,000원에 매표를 하고 부랴부랴 전등사에 올랐다.

  우리나라에 불교가 처음으로 전래된 것은 372년인데 그로부터 9년 후인 381년(소수림왕 11년) 세운 전등사니 가히 현존하는 한국 사찰 중 가장 오래된 절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진나라에서 건너온 아도화상이 진종사란 이름으로 전등사를 시작하고 그는 강화도를 거쳐 신라에 불교를 전파하게 된다. 고려시대인 1282년에 충렬왕의 왕비인 정화궁주가 몽고 출신 왕비의 핍박을 하소연하며 경전과 옥등을 시주하여 이 때부터 전등사라 불리게 되었다. 이렇게 유규한 역사를 가진 절을 가려니 마음이 촉촉해지면서 빨리 보고싶은 조바심마저 일었다.

 

 

전등사에 오르면서 오른쪽에 있는 윤장대를 제일 먼저 만났다. 전등사 윤장대는 보물 684호를 똑같이 재현한 것이라 한다. 윤장대를 세운 이유는 부처님법이 사방에 널리 퍼지라는 의미와 우리나라에 지세를 고르게 해 난리가 없고 비바람이 순조로워 태평성대를 이루어달라는 염원이 들어있다고 한다. 이에 전등사에서는 사찰을 찾아오는 많은 분들이 자신의 삶을 한 번 뒤돌아보고, 희망하는 소원이 하루속히 상취되도록 하기 위하여 발원문을 작성한 후 윤장대 안에 넣고 돌리도록 성물(聖物)을 조성하였다. 그 모습이 보문사에 있던 것과 다르게 길죽한 손잡이가 더 달려있어 윤장대를 돌리기에 더 편리하게 만들어진 것 같았다.  눈울 끄는 화려한 색감이 불교미술의 한 면모를 엿보게 했다.

 

 

전등사로 들어가는 불이문 구실을 하는 대조루이다. 전등사를 알려주는 편액이 보인다. 이곳의 계단을 올라서면 바로 대웅전이 보였다. 대조루에서 대웅전을 바라볼 때의 시선은 25도 위쪽으로 향하게 되는데 이각도가 대웅전의 석가모니불을 가장 존경하는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각도라고 한다.

 

 

 전등사의 대웅보전이다. 어찌보면 금방이라도 날개짓을 하며 하늘로 훨훨 날아갈 것 같은 새의 날개같은 지붕이 내 맘을 사로잡는다. 대웅보전은 그 자체만으로도 조선 중기의 건축 양식을 보여주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생각보다 대웅전이 소박했는데 계단을 따라 놓여진 보랏빛 화분이 그 분위기를 더했다.

이 건물은 조선 광해군 13년(1621)에 새로 지었는데 정면 3칸, 측면3칸의 목조건물로 지붕은 다포양식이다.

고종 3년 병인양요 때는 프랑스 군에 대항하여 호국결사의 각오로 전투에 임했던 장병들이 무운을 부처님께 빌기 위해 대웅보전의 기둥과 벽면에 자신들의 이름을 써 놓은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다. 물론 프랑스군과의 전투는 승전고를 울렸다.

 

 대웅전 안에는 목불이 세 개있다.그 인자한 표정은 누구든지 겸손해지게 만드는 것 같다. 나는 불교 신도가 아닌데도 손이 저절로 모아져서 합장을 했다. 이 옆으로는 자신의 죄를 살펴볼 수 있는 업경대도 있으니 뺴놓지말고 둘러보는게 좋겠다.

 

 

대웅보전의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 나부상을 주의깊게 봐야할 필요가 있다. 나부상이 만들어진건 17세기 말로 추정하는데 여기에는 전해져 내려오는 슬픈 전설이 있다. 당시 나라에서 손꼽히는 도편수가 대웅보전 건축을 지휘하였는데 공사 도중 사하촌의 주모와 눈이 맞았다. 도편수는 돈이 생길 때마다 주모에게 모두 주었는데 주모는 그 돈을 가지고 야밤도주를 하였다. 도편수는 배신감과 분노 때문에 일손도 안잡히고 잠도 안왔다. 대웅전 마무리 공사에서 자신도 모르게 벌거벗은 여인이 지붕을 떠받치는 조각이 만들어졌다. 도망간 여인이 잘못을 참회하고 세상을 올바르게 살아가라는 염원이 담겨있었던 것이다...

시인 고은이 이 나부상을 보고 지은 시가 생각난다.

강화 전등사는 거기 잘 있사옵니다/ 옛날 도편수께서 딴사내와 달아난/ 온두리 술집 애인을 새겨/ 냅다 대웅전 추녀끝에 새겨놓고/ 네 이년 세세생생/ 이렇게 벌 받으라고 한 / 그 저주가/ 어느덧 하이얀 사랑으로 바뀌어/ 흐드러진 갈대꽃 바람 가운데/ 까르르/ 까르르/ 서로 웃어대는 사랑으로 바뀌어 거기 잘 있사옵니다.

 

 

대웅전 맞은 편으로 범종이 있는데 보물 393호이다.

이 종은 전형적인 우리나라 종과는 판이하게 다른 중국 송나라의 종이다. 전체 높이가 163m 밑지름이 1m 종루는 쌍용이 웅크리고 있고, 종 몸에 상, 중, 하로 구획이 지어져 띠가 둘려있는 형태이다. 기하학적 무늬로 장중하고 소박한 중국 종의 솜씨를 보이며 종소리가 맑고 아름다운게 특징이다.

이 종은 일제 말기 일제가 공출이라는 명목으로 빼앗아가는바람에 한 때 전등사를 떠나기도 했으나 광복이후 부평 군기창에서 발견되어 다시 전등사로 옮겨왔다고한다. 그나마 우리가 이 아름다운 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참으로 다행이지 않을 수 없다.

 

 

절 마당 한 켠에 졸졸졸 소리로 정막을 깨며 흐르는 감로수가 나의 발목을 잡는다. 그 유혹에 못이겨 한 모금 들이켜본다. 이상하게도 절에서 마시는 물은 끝맛이 달달한 것이 평소에 마시던 물과는 분명 차이가 있다. 산을 거쳐 내려오면서 자연 정화가 된 탓일까?이 물을 마시고 내맘과 몸까지 정화가 되면 얼마나 좋을꼬...^^

 

 

전등사 주위는 온통 이렇게 적송으로 둘러싸여있어서 금방 신선이라도 나타날 것 같은 모습이다. 마당에 있는 오래된 느티나무도 좋지만 나의 시선을 끄는건 소나무들이다. 이 소나무들을 보고있으려니 가슴이 시원해지면서

마음이 편안해졌다. 구불구불한 곡선 때문일까? 아님 우리가 오래전부터 그림속에서 많이 봐오던 풍경이라 익숙해서 그런 것일까? 소나무는 언제보아도 반갑고 정겹다....

전등사의 풍경에 한참 취해 있는데 해가 뉘엿뉘엿 기울었다.

아차차, 서해 낙조!

나는 그제서야 낙조 사진을 한 장 건져야되겠다는 생각에 또다시 허둥지둥 전등사를 내려왔다.

 

 

해야~~쫌만 기다려주련? 5분?10분?

마음이 넘 급해졌다. 전등사에서 뒷쪽 길로 고개를 하나 넘어야하는데...

이미 저쪽 하늘은 붉은기가 점점 사라져가고 있었다. 가능하다면 해를 실로 꽁꽁 묶어두고싶었다.

가만히 앉아서 운전만 하는데도 괜스레 발에 땀이 났다. 그렇다고 지방도로에서 과속할 수도 없고

긴장감 속에서 부지런히 운전만 할 수벆에 없었다.

그렇게 열심히 빌었건만 우리가 동막해수욕장에 도착했을 땐,,,휴우...

막 해가 지고 하늘엔 붉은 기운이 아주 조금 남아있었다.

이거라도 찍어야겠다면 삼각대를 펼치는데 기운이 뚝 떨어졌다. 그래서 찍은 사진이 바로 이사진이다...^^

집에 와서 보니 나름 노을이 괜찮다. 담에 밀물일 때, 해가 다 떨어지기 전에, 해의 붉은 그림자가 바다에 비치는 아주 멋진 사진을 찍으러 다시 와야겠다. 강화도의 저녁은 이렇게 저물고 있었다.

 

♣지도♣

 

 

 

♣문의♣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 635 전등사종무소 (032-937-0125)

♣찾아가는 길♣

 

 

직행 시외버스
● 신촌~강화 : 10분 간격으로 운행되며 1시간 30분 소요
● 신촌~전등사 : 1시간 간격으로 운행, 매시간 40분 출발
    (화도방향 승차>온수리 하차)
     *2호선 신촌역 7번 출구 서강대교 방향으로 진출 후 50여미터 지점에 강화운수 터미널 위치
● 인천~강화 : 15분 간격이며 1시간 50분 소요
● 부천~강화 : 20분 간격이며 1시간 40분 소요
● 안산~강화 : 90분 간격(1일 6회), 2시간 소요
완행 시외버스
● 안양~강화 : 20분 간격, 1시간 50분 소요
● 영등포~강화 : 10분 간격, 1시간 40분 소요
광역 버스 700번
● 인천터미널(신세계 앞)→동암역(북광장 앞)→전등사 앞(온수리)
    : 30~40분 간격으로 1시간 50분 소요

2005년 7월 1일 현재

관람료(개인)
1,000원
1,300원
2,000원
관람료(단체)
  800원
1,100원
1,700원
주차료
소형 : 2,000원   /   대형 : 4,000원
♣주변관광지♣

초진진/덕진진/광성보/강화역사관/보문사/정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