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청수의 테마여행/경기도 여행

강화도의 가을을 만나다 성공회강화성당/고려궁지/고인돌

석화이장 2009. 10. 12. 23:05

강화도를 온통 휘젓고 다니는 여행은 생각보다 시간이 꽤 걸렸다.

아무래도 하나하나 놓치지않고 보려니 그런 모양이다. 점심 때가 가까워오자 슬슬 배가 고팠다.

어디가 좋을까? 이미 강화도 시내에 들어왔지만 딱히 먹을만한 곳이 눈에 띄지 않는다. 이럴땐 나만의 방법이 있다. 바로 원주민에게 식당을 물어보는거다. 이 방법은 내가 거의 실패한 적이 없는거라 주위를 둘러보고 누굴 찍을까 한참이나 망설였다. 그리고 너무나 인상이 좋은 아줌마한테서 좀 멀긴 하지만 '우리옥'이라는 식당이 꽤 먹을만하다는 귀한 정보를 들었다. 푸하하~~~바로 여기다!!! 난 친절하게 가르쳐준 길을 따라 뒷골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아뿔사,,, 공사중이었다. 우리옥 건물은,,,

꿩 대신 닭이었던가? 옆에 있는 자그마한 식당인 '호수식당'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월척이었던거다.!!

식당안의 벽지는 오래돼서 퇴색됐고 식탁이나 모든게 그냥 그랬는데 막상 주인 아저씨가 반찬을 가지고 들어오자 우리는 눈을 크게 뜨고 반찬들을 내려다보았다^^ 탄성과 함께 믿을 수없어서 얼른 카메라에 담았다.

 

 금방 곱실곱실하게 지은 밥이랑, 조개를 넣은 담백한 미역국, 강화도의 명물 순무김치, 거기다 조개젖,

오징어, 가지나물,,, 사진에서 보다시피 진수성찬이다. 거기다 가격을 들으면서 뒤로 한 번 더 넘어졌다.

5,000원이었다. 이 많은 반찬들이... 우왕~~~~

누룽지까지 점심을 너무나 거하게 먹고 가까이에 있는 강화 성공회성당으로 갔다.

 

  강화 성공회성당

 

 성베드로와 바울로 성당이라고도 하는데, 1896년(고종 33년) 강화에서 처음으로 한국인이 세례를 받은 것을 계기로 1900년 11월 15일 강화에 한국 최초의 성당을 세우게 되었다.

 

 성당 안에 들어가면 왼쪽으로 종이 보인다. 종 표면에는 십자가가 새겨져있다. 종마저도 우리나라의 범종과 너무나 비슷하게 생겼다. 그 당시 사람들의 마음을 끌기 위해 이렇게할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성당 건립자는 한국 성공회 초대 주교인 존 코르페(C. John Corfe: 한국명 고요한)이다. 정면 4칸, 측면 10칸 규모의 2층 건물로, 목골조를 사용하고 벽돌을 쌓아올린 기와집이며, 2층은 바닥이 없는 중층 구조이다. 로마의 바실리카 양식을 본떠 지은 것으로 외형상으로는 불교사찰 분위기를 풍긴다. 한국에 서양 건축이 도입되던 시기의 초기 건축으로 한국 그리스도 역사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다. 특히 서양식 장식이 거의 없는 순수한 한식 목조 건물이면서 지붕과 내부구조는 한국적 건축 양식을 많이 가미했기 때문에 그리스트교의 한국 토착화를 뚜렸하게 상징한다.

창문을 통해 성당 안을 들여다보니 지금도 주일에는 성당으로 쓰이고 있었다.  건물 안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풍겨나오는 분위기는 어느 성당보다도 엄숙했다. 아무도 성당에 없고 문이 잠겨져있어서 내부를 자세히 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보리수나무를 비롯한 오래된 나무들에 싸여있는 조용한 성당이었다. 아니, 성당이라기보다는 절에 가까운 적막이 흐르는 곳이었다.

입장료는 없다. 고려궁지에서 도보로 5분도 안걸리기 때문에 고려궁지 표지판을 보고가면 쉽게 찾을 수 있다.

 

◀  고려궁지 

 

고려궁지는 강화 성공회성당에서 차로 5분 정도면 갈 수 있으며 강화군 강화읍 관청리에 있다. 고려가 몽골의 침략에 줄기차게 항전하던 39년간의 궁궐이 있던 곳이다.

 

 

 1232년 6월 고려 고종은 자주적 정신으로 항몽의 기치를 높이 든 무인들의 주장에 따라 지세가 험한 강화도에 도읍을 옮겼으며 1234년 궁궐과 관아를 완공하였다. 1270년 몽골과의 강화(講和)가 성립되어 개성으로 환도한 뒤 궁궐과 성곽은 무너져서 지금은 궁지내에 강화지역을 다스렸던 유수부가 있다. 또한 고려궁지 내에는 외유장각이 있었으며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들이 이곳에 있던 많은 서적들과 은궤, 지도 등을 약탈해갔다.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있는 고서들도 이곳에서 약탈해 간 것이다.

 

 고려궁지 내에 있는 동종이다.

지금으로부터 760여년전 몽고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고려 왕조가 강화도로 피난했을 당시 임금님이 거쳐했던 궁궐로 이곳에서는 약 39년간(1232~1270) 몽고에 항쟁하였다. 강화도로 천도해 온 고종은 약 2년에 걸쳐 연경궁을 본궁으로 궁궐과 관아를 지어 건물의 명칭을 전부 개성의 궁궐과 똑같이 하고 궁궐 뒷산도 송악산으로 불렀다고 한다.  사실 궁안에는 별로 볼 것이 없이 쓸쓸해서 강화로 천도했던 당시의 모습을 상상하긴 어려웠다. 그나마 이렇게라도 궁터임을 알리고 있으니 다행이라 여겨야하는건지...

♣입장료♣

 청소년/군인/어린이 : 개인 600원, 단체 500원

 어른                     : 개인 900원, 단체 700원

♣관람시간♣

동절기(11월1일~2월28일) : 9:00시 ~ 17:00시

하절기(3월1일~10월31일) : 9:00시 ~ 18:00시

♣찾아가는길♣

승용차 :48번 국도를 따라 강화읍 시내로 들어와서 강화 시내 중간쯤 오른쪽에 북산-고려궁지 이정

                              표가 되어있어 따라가면 된다.

 버스   : 강화버스종합터미널에서 풍물시장을 거쳐 북산쪽으로 10~20분 정도 걸으면 된다.

 

 

◀ 강화 고인돌 

 

 

 

 상고사와 고대사의 좋은 자료가 되고있는 강화고인돌은 강화도 하정면 부근리에 있다.

청동기 시대의 고인돌 유적으로 탁자식이다. 지상에서의 높이 2.6m, 덮개돌의 길이가 6.4m 폭 5.2m 이나 되는데 화강암으로 되어있다. 지금까지 발견된 북방식 고인돌 가운데 대형에 속한다. 남북으로 세워진 동쪽 굄돌은 약 15도, 서쪽 굄돌은 약 20도 정도 기울어져있다. 무게는 약 50톤 되는 덮개돌이 굄돌 위에 거의 수평을 유지하며 남북으로 길게 놓여졌다. 아주 넓은 초원 위에 놓여있는 이 고인돌 주위에서 다른 지역과 영국의 고인돌까지 볼 수 있었다. 그처에 부근리고인돌군에는 작은 고인돌이 많이 있다.

 

♣관람시간♣

강화고인돌은 개방되어 있어서 입장료도 없고 언제나 볼 수 있다. 100대 규모의 대형주차장도 무료다.

♣찾아가는길♣

강화고인돌 : 48번 국도를 따라 강화읍 통과- 강화산성 서문 삼거리에서 직진(오른쪽)하여 48번 국도 따라 서쪽으로 2.0km진행-송해삼거리-직진(왼쪽)하여 3.0km지점의 도로의 오른쪽에 있다.

♣지도♣

 글/사진 샤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