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비운의 임금인 단종을 만나러 가는 길은 그리 멀지 않았다. 옛날에야 첩첩산중이어서 군졸 50인의 호위를 받으며 단종이 창덕궁을 출발하여 청령포까지 오는데 7일이 걸렸다고하지만 지금이야 교통이 워낙 발달하다보니 이미 강원도쯤은 한 손바닥 안이다. 조선의 제6대 임금인 단종은 세종 23년인 1441년 문종과 현덕왕후 권씨 사이에서 원자로 태어났으며 이름은 홍위(弘暐)이다. 그가 12세 되던 해에 문종의 승하로 왕위를 계승하였으나 세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만다. 그 후 사육신이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죽음을 당하고 17세의 나이에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청령포로 유배를 오게 되어 외부와 단절된 생활을 하게된다. 청령포로 오는 동안 어린 단종이 이 길에 슬픔을 가득 안고 왔을걸 생각하니 나도 괜스레 마음이 답답하고 슬펐다. 청령포는 2008년 12월16일 명승 제50호로 지정되었다.
청령포를 들어가려면 배를 타야한다. 그래서 육지 속의 작은 섬이라 했던가? 청령포는 동,남,북 삼면이 물로 싸여있고 서쪽으로 육육봉이라 불리는 높은 산이 솟아있어 나룻배를 이용하지 않으면 출입을 할 수 없는 유배지로서는 최적의 장소임에 틀림이 없다.
언뜻보면 회룡포 같기도하다. 청령포 앞에 흐르고 있는 강은 영월의 서강인데 씩씩한 동강과 비교되서 '지어미강'이라고도 불린다. 물살이 잔잔하고 평화롭다고해서 붙은 이름이란다.
배에서 내리면 울창한 소나무숲이 보이고 그 안에 단종의 어가가 있다. 초가집은 단종을 모셨던 궁녀와 관노들이 살았던 행랑을 2000년 승정원 일기를 바탕으로 재현해 놓았다고 한다.
사실 유배지엔 여자를 들일 수없는데(그 이유는 자식을 볼까봐이다), 유배당한 단종을 모시려고 궁녀들이 몰래 궁궐을 빠져나와 청령포로 왔다. 나중에 이 사실을 세조도 알았지만 그냥 묵인해주었다고 한다.
역시 승정원일기를 바탕으로 2000년도에 세워놓은 단종의 어가이다.
어소에는 밀랍인형이 있었는데 파란 두루마기를 입은 사람이 단종이다. 하얀 두루마기를 입은 신하는 이상하게도 단종을 똑바로보고 인사를 하지 않고 옆으로 절을 하고있다. 그것은 높은 사람에게 하는 인사법이라 한다. 방문을 한 사람이 혹시나 칼같은 무기를 소지하고 있더라도 바로 사용하지 못하게 한 것이라하니 우리 조상들의 지혜는 탄복할만하다.
단종의 어소 마루에 걸려있는 시조인데, 단종이 살았을 때는 맹수가 우굴거리는 아주 깊은 산중이어서 저녁에는 일찍 문을 걸어잠가야했다고 한다. 어린 단종의 적막한 마음을 너무나 잘 표현한 시조로 보인다.
전순희 문화해설사 선생님이 단종과 청령포에 대한 얘기를 간결하면서도 실감나게 해주셨다. 어소 마루에 앉아서 듣는 사람들의 표정이 해설사 선생님의 말 한마디라도 안놓치려는 듯 진지하다. 진작 이렇게 열심히 역사공부를 했으면 지금쯤???^^
영조는 1763년에 162cm 크기의 오석으로 '단묘재본부시유지'를 세웠다. 즉,
'단종이 이곳에 계실 때의 옛터'이다라는 뜻이다. 비석 뒷편에는 '영조 39년 계미년 가을 울면서 받들어 쓰고, 어명에 의하여 원주감영에서 세웠다. 지명은 청령포이다'라고 써있다.
호장 엄흥도는 매일밤 남몰래 이곳에 와서 문안을 드렸다고하는데, 어소를 향해 90도로 절하며 자라고 있는 소나무 이름이 그래서 '엄흥도공(公)소나무이다. 그러고보니 어소를 둘러싸고 있는 소나무들을 자세히보면 모두 가지가 어소를 향하고있다. 이는 모두 단종에게 절을 하고 있는 것이라한다. 그리고 그 반대편으로 가지를 뻗고있는 소나무들은 배신을 하고있는 소나무란다.
소나무숲 사이에 서있는 금표비이다. 이 금표비는 단종을 제약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단종이 돌아가신 후에 그래도 임금이 살았던 곳인데 백성들이 마구들어와서 농사를 짓거나 훼손하면 안되겠다고해서 영조가 세운 비이다. '동서로 300척 남북으로 490척과 이후에 진흙이 쌓여 생기는 곳도 또한 금지하는데 해당된다'라고 써있다.
1988년 천연기념물 제349호로 지정된 관음송이다. 단종이 유배생활을 하면서 매일 이 나무에 걸터앉아
한양에 있는 부인 정순왕후도 생각하고, 할아버지 세종대왕도 생각하면서 슬픔으로 옷깃을 적셨던 곳이다.
단종의 유배생활을 보았으며. 단종의 오열하는 소리를 들었다고해서 관음송(觀音松)이다.
소나무의 크기는 30m, 둘레는 5m인데 두 달래로 갈라져 동,서로 비스듬히 자라고 있다. 한 가지는 한양쪽으로 한 가지는 청령포쪽으로 되어있어 단종의 마음은 한양쪽에 몸은 청령포에있다는걸 표현한다고한다.
관음송 뒷편에 있는 나무계단을 따라올라가면 망향탑이 있는데 단종이 쌓은 것이라 한다.
한양에 있는 부인 송시를 생각하며 주위의 돌을 쌓아올린 것인데 단종이 남긴 유일한 유적이다.
17살의 어린 단종이 얼마나 외로웠을까...갑자기 내 마음이 울컥한다. 나도 가장 무서운게 외로움인데...
망향탑은 이렇게 높은 절벽 위에 있다.
서강은 역사의 슬픔과 단종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지금도 유유히 소리없이 흐르고 있었다.
나도 내려다보면서 단풍이 들고있는 아름다운 절경이 어쩐지 자꾸 미워졌다.
이럴때 단종은 훨훨 날고싶었으리라. 한양으로 도망치고싶었으리라...
청령포를 나오는데 영월군수가 단종의 넋을 위로하고 영월의 평안을 비는 시가 하나 있었다.
다시 배를 타고 주차장으로 가기 위해 자갈밭을 걷는다. 원래 이 자갈밭까지 모두 믈이 찼었는데 점점 물이 줄어들어서 강폭이 좁아졌다고한다. 강은 깊어보였지만 물속이 다 들여다보일 정도로 맑아서 물고기들과 다슬기 있는 것이 다 보였다.
청령포 화장실 위에는 이렇게 써있다. '욕심을 버리는집'. 욕심도 버리고 다른 모든 쓸데없는 것도 버리고
나와보니 화장실 입구에 왕방연 시조가 있었다. 학교 다닐 때 배운시라 금방 눈에 익었다.
금부도사 왕방연이 단종께 사약을 드리고 한양으로 돌아가는 길에 비통한 심정으로 청령포를 바라보며 지은 시조인데, 후에 왕방연은 먹골에서 배를 재배하면서 해마다 가장 먹음직스런 배를 골라 청령포를 향해 제사를 지냈다고한다.
단종이 유배를 왔던 해에 큰 홍수로 강물이 벌람하여 청령포가 물에 잠기게 되었다. 단종은 영월 동헌의 객사로 처소를 옮겼다가 1457년 10월24일 유시에 17살의 어린나이로 관풍현에서 돌아가셨다. 정사에서는 왕방연의 사약을 드시고, 야사에서는 공생 복득이라는자에 의해 돌아가셨다는 두 가지 설이 있다.
단종의 슬픔을 가슴에 가득 담고 서울로 오면서 한편으로는 그 역사의 현장을 직접 밟으면서 보고 느낌을 받아서 우리나라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밑거름이 된 것 같아 뿌듯한 마음도 들었다. 더구나 천년의 숲으로까지 지정이 된
청령포 안의 700그루나 되는 소나무에서 맡은 피톤치드향으로 인해 몸과 마음이 출발전보다도 더 가벼워진 것 같았다. 즐기고 노는 여행도 좋지만 이런 역사여행도 나에게 보약이 되는 것 같아서 뜻있는 하루였다.
♣위치♣
강원도 영월군 남면 광천리 67-1번지(청령포 안내소: 033-370-2657)
♣이용요금♣
구분 어린이 청소년.군인 성인 비고
개 인
700
1000
1300
도선료포함(경노 200)
단 체
600
700
1100
도선료포함(경노 200) ※ 기준: 30인 이상
군민(개인/단체)
500/400
600/500
1000/800
♣찾아가는길♣
자가용 : 1. 중부고속도로-신갈.호법 분기점(영동고속도로)-망종분기점(중안고속도로)-제천 IC(38번 국도)- 서영월나들목-청령포 좌회전(59번 국도)-청령포
2. 중부고속도로-신갈.호법분기점(영동고속도로)-만종분기점(중앙고속도로)-신림IC-(88번국도)
-주천(영월방향)-북상삼거리(좌회전)-영월삼거리-장릉삼거리(우회전)2.3km-청령포
대중교통 : 영월읍-청령포입구에서 시내버스이용(10분소요), 택시 이용(5분소요)
♣주변 관광지♣
장릉/선돌/관풍헌/금강공원/별마로천문대/보덕사
♣추천맛집♣
솔잎가든: 033-373-3323 한정식/곤드레나물밥이 별미다.
♣지도♣
글/그림 샤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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